[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정부가 주력 수출 분야인 반도체 산업 지원 규모를 대폭 확대하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K-반도체 경쟁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과 관련해 글로벌 각축전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표 산업군의 생태계를 보호·성장시키겠다는 의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수조원의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데 비해 이익 재투자나 지원 조건 준수 등 기업 책임에 관한 내용은 빠져 있어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로 귀결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도체 공정 작업 중인 연구원 (사진=SK하이닉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관계부처 합동으로 ‘글로벌 반도체 경쟁력 선점을 위한 재정투자 강화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반도체 분야 투자를 기존 26조원에서 33조원으로 확대하는 한편, 내년까지 4조원 이상의 재정을 투입하는 등 전력·용수 등 인프라 구축에도 파격적인 지원이 이뤄질 예정입니다. 특히 용인·평택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선로 지중화 비용 중 기업 부담분의 70%를 국가가 분담하고 투자 보조금을 신설해 반도체 기업의 투자도 지원합니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막대한 투자비용이 드는 상황에서, 반도체가 한국경제에서 가지는 위상을 생각할 때 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재정의 마중물 투자를 통해 해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일견 시의적절해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국고 지원에는 국민의 혈세가 쓰인다는 점에서, 정부의 이번 반도체 지원엔 기업의 이익 환원 등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기업들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박종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반도체 산업 지원은 미래를 위한 전략적 투자로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며 “이는 지원 정책의 성공을 담보하는 핵심 요소”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지원으로 발생한 이익의 일정 부분을 국내 연구개발(R&D) 및 생산 설비에 의무적으로 재투자하도록 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국내 기업과의 상생 협력 강화 등 국가적 과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 실현에 기업이 실질적으로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의 지원이 단기적 이익 분배에 사용되는 것을 제한하는 등 공공 가치 기여도 담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시민단체도 기업에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자칫 업체들 호주머니만 채워주는 결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연대 경제정책국 부장은 “이번 지원책에는 반도체 기업들이 보복 관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등 ‘산업 공동화’ 우려가 적지 않은데 이와 관련한 방지책이 빠져 있다”며 “기업 잇속만 채워준 뒤 해외로 다 빠져나가도 이를 막을 수 없는 구조”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목적에 따라 지원이 이뤄지는만큼, 국내 환원이 되도록 해야한다”며 “이중 과세 우려가 있지만 해외 계열사 이익금에 대한 과세 등 이익 환수 조항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한편,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가 시급한 만큼 사회적 책임 관련 조항을 명시하기보다 선지원 후환원 방식의 자연스런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 경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여러가지 직·간접적 지원을 해주고 경쟁력을 강화하는게 국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생산 기반이 잘 확충돼 수익을 나면 고용 창출과 법인세가 늘어나게 되는 등 자연스럽게 환수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