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빨갱이'와 일본 문화 개방

입력 : 2025-07-04 오후 1:46:10
‘빨갱이’는 그냥 별명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좌익과 우익으로 갈려 6·25전쟁까지 치른 마당에 ‘빨갱이’라는 낙인은 무시무시했습니다. 청년기부터 평생을 따라다닌 꼬리표였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오릅니다. 
 
대통령이 되자 그냥 세상이 빨갛게 물들 것으로만 여긴 사람들. 생각 외로 많았습니다. 하지만 빨갛기는커녕 대한민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여러 업적이 있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 문화 창달의 초석을 놓은 국가 수반. 바로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외환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던, 모두가 신음하던 시절. 대통령 김대중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합니다. 
 
1998년 4월17일. 문화관광부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감을 갖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추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연히 난리가 났습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가 몰려들면 온갖 일본의 ‘더러운 습성’이 스며들고, 국민 정신도 속된 말로 ‘개판’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대륙에 혹처럼 붙어 있으면서도 중국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주변국들은 모두 흡수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남았어요. 그것은 독창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도 우리식으로 재창조했다 이겁니다. 중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어도 우리의 해동불교로 발전시켰고, 유교를 들여와서도 조선 유학으로 심화시켰습니다.” 
 
“우리 문화를 쉽게, 간단히 볼 일이 아닙니다. 우리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았어요. 그것은 위대한 조상들이 물려준 소중한 것입니다.” 
 
1998년 10월 영화부터 물꼬를 틉니다. 1999년 9월에는 2000석 이하 실내 공연이 뒤따르고, 2000년 6월에는 게임과 음반, 스포츠 등 전분야에 걸쳐 속도가 빨라집니다. 
 
김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직도 일본 문화 개방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인기를 끄는 닌텐도나 스테이플레이션 같은 게임기는 불법으로 분류돼 ‘법의 심판’을 받는 이가 수두룩할 겁니다. 
 
특히 ‘한류’는 꿈도 꾸지 못할 겁니다. 일본 대중문화가 들어오면서 한국도 문화 세계화에 눈뜨게 됐습니다. 모방을 하면서 창조성을 키웠고, 대략 30년쯤 지나면서 이젠 한국 문화가 세계 구석구석 퍼져 ‘문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겁니다. 
 
1998년 한국 방문을 홍보하기 위해 문화예술인들과 CF 촬영을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사진=김대중재단)
 
목마른 국가 비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김대중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이어지며 한류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국가 수반의 결단력은 문화의 한류에 그치지 않고, 산업과 국가 위상 등에서 대한민국의 부가가치를 크게 높였습니다. 
 
문외한이라 그런지, 놓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후 이명박, 박근혜 등으로 이어지는 대통령들에서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뚜렷한 비전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대통령은 나라의 30년 뒤 먹거리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으며 민심 잡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 창달’이라는 국가 프로젝트를 끄집어냈습니다. 역대 민주당 정권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며 미래 먹거리를 잘 찾았습니다. 30년 뒤 국가를 내다본 이재명 대통령의 비전은 뭘까요. 아직 눈에 띄진 않습니다. 국가 장래를 한마디로 함축한 비전. 빨리 눈에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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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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