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프라임] 왕관의 무게와 인사청문회

입력 : 2025-07-17 오전 6:00:00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지은 희곡 『헨리 4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원문을 찾아보면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입니다. 직역하면 “왕관을 쓴 자의 머리는 편안하지 않다”입니다. 
 
이 대사가 우리말로 의역되며 더 멋진 문장으로 거듭났습니다. 정상에 올라 권력을 쥔 모습을 상징하는 왕관을 쓰려면, 고통뿐 아니라 이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도 참아내라는 겁니다. 
 
불과 얼마 전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앉은뱅이 주술사를 태운 장님 무사가 ‘왕관의 무게’를 가늠치 못하고 춘 칼춤을. 자칫하면 나라를 들어먹을 뻔 한 사실을. 3년 내내 ‘왕관의 무게’를 저울질하지 못한 대가를 지금 치르는 모습을 뚜렷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7월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인사청문회 시즌 오픈
 
이른 대통령선거를 치르고 이재명정부가 새로 들어섰습니다. 12·3 비상계엄부터 탄핵을 거쳐 대선까지 숨가쁜 겨울과 봄을 달려왔습니다. 6·3 대선을 거쳐 새 정부의 내각이 조각되고 있습니다. 
 
각 부처의 장관이 될 후보자가 지명되고, 적격성을 따지는 인사청문회가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시절이던가요. 당시 민주당 의원이던 강병원 전 최고위원은 인사청문제도를 놓고 “부처와 예수도 낙마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인사청문제도가 흠결만 부각시키고 망신을 주는 식으로 악용되고 있고, 정쟁의 장으로 변질돼버렸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인사청문제도가 없다면 드러낼 필요도, 드러날 수도 없는 중대한 흠결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건 ‘왕관을 쓰려는 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사실 장관 등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전면 도입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시작됐습니다. 
 
2005년 1월5일 임명된 이기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임명 5일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촉발됐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검토를 지시했고, 당시 여당의 반발 가운데서도 도입된 겁니다. 
 
어떻게 보면 노 전 대통령은 인사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이전에는 ‘사람이 개차반’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쓴다’는 기조였다고 하면, 이후에는 국민들에게 ‘어느만큼 개차반’인지 정도는 보여주게는 된 겁니다. 
 
장관이 인사청문회에서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대통령의 임명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임명하면 그만입니다. 
 
윤석열정부 시절 국회의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29명입니다. 문재인정부도 23명이나 됩니다. 박근혜정부(10명), 이명박정부(17명), 노무현정부(3명)도 임명 강행이 이뤄졌습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7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선 넘은 지명자들' 
 
이재명 정부의 첫 내각이 조각돼 장관급 19명에 대한 국무위원 인사청문회가 뜨겁습니다. 세상에 부럼 없이 산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털면 털리는 게 사람 사는 일이라 안 털리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번 청문회도 ‘갑질’과 ‘내로남불식 교육관’ 등을 비롯해 각종 의혹이 난무합니다. 뭐, 한두 번 보는 일도 아니고, 내 먹고살기 바쁜 판에 ‘누가 개차반’이든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몇몇 지명자는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옵니다. 선 넘었다고 장관 안 되는 일은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엔 ‘당신들도 별반 다를 게 없구나’라는 인상이 스며듭니다. 
 
거대한 댐도 스며든 물방울에 무너집니다. 이제 새 정부 시작한 지 한 달 좀 넘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했습니다. ‘선 넘은 지명자’는 등 돌려 가게 하는 게 맞습니다. 그게 남은 4년 11개월을 보장하는 길입니다. 
 
오승주 공동체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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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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