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정부 시절 대통령실이 KT 경영진 교체 과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취재하면서 최근 만난 전·현직 임원들은 하나같이 KT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교체된 수장이 보은인사·코드인사를 남발했다는 논란과 더불어 최고경영자(CEO) 연임을 위한 수단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알짜 자산에 대한 헐값 매각이 반복되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었다.
KT 관계자들은 회사 근간을 흔드는 경영적 판단의 중심에 낙하산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직 KT 고위 임원은 "KT를 망가뜨리는 방식이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며 "이제는 화가 날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얼마나 KT를 만만하게 봤길래 직원들이 청춘을 바치며 가꿔놓은 꽃밭을 정권 실세들이 망가뜨리고 있느냐"는 울분이었다.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한때 시가총액 1위를 달렸던 KT는 점점 혁신과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했지만 경쟁사에 비해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 5G 최초 상용화 등으로 통신 시장을 제패했던 저력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그저 쫓아가기 급급한 형국이다. 국내 AI 산업을 육성할 거대언어모델(LLM)조차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국내 시장 공략을 위해 파트너가 필요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 덜컥 손을 잡은 것을 두고도 여러 말들이 나왔다. 국민과 기업이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에 방점을 두고 AI 사업을 전개한다지만 데이터 주권 확보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네이버와 LG가 국내 AI 대표주자로 인정받으며 새 정부에서 인재를 배출한 것과도 대비된다. KT는 어느새 인재의 산실은커녕 낙하산 인사들이 찾는 편안한 일자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을 아닐까.
무엇보다 KT의 최근 모습에서 이석채·황창규 전 회장 체제가 오버랩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업 가치를 키워 회사를 성장시키기보다 단기적 재무구조 개선에만 급급했던 두 회장의 전철을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 이 전 회장이 취임한 2009년 242만평에 달했던 KT 토지 자산은 2014년 187만평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KT 건물 자산은 272만평에서 110만평으로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도 수반됐다. 2009년 이 회장은 6000명을, 황창규 전 회장은 8000명 직원들을 잘랐다. 지난해 5700여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과 자회사 전출을 단행한 바 있는 김영섭 현 대표는 두 전 회장처럼 부동산 매각 카드도 만지작거리고 있다. 자산 매각만으로 당장 재무 상태 개선이 가능한 까닭이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내부 시선에 있다. 낙하산 CEO와 경영진으로 멍들어가고 있지만, 현직 실세로 불리는 임원은 "KT가 제대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흔들지 말라"며 관련 의혹에 대해 "일종의 음해"라고 반박한다. 회사의 경영을 외부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 월권적 행위라는 얘기다. 그러나 노동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모든 기업은 감시의 대상이다. KT라고 예외일 순 없다.
'주인 없는 회사'로 여겨지며 끊임없이 흔들려온 KT의 흑역사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KT의 주인은 1차적으로는 주주고, 그다음이 국민이다. 거꾸로 가는 KT의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고 지적하는 일을 언론이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지은 테크산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