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쇄 푼 이재용…‘위기 탈출’ 전력

사법 리스크 해소…변호인단 “현명한 판단 감사”
반도체·가전 등 주력 산업 위기…리더십 시험대
M&A·공개 활동 시동…'광폭 행보' 더 늘어날 듯

입력 : 2025-07-17 오후 4:27:26
[뉴스토마토 안정훈·박혜정 기자] 대법원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약 8년에 걸친 족쇄를 풀면서, 이 회장은 훼손됐던 삼성전자의 경쟁력을 복원하기 위한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됩니다. 반도체 분야는 SK하이닉스와 TSMC 등 경쟁사에 뒤처지고 있고, 스마트폰과 가전업계도 중국의 저가 공세와 미국의 고율 관세로 시름하는 등 위기가 산적한 실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일선에 복귀할 이 대표가 컨트롤타워로서 대내외 이슈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지난달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했다. (사진=뉴시스)
 
변호인단 “현명한 판단에 감사”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7일 오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전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법원은 이 회장이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거래와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검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날 재판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습니다. 일부 삼성전자 관계자들이 오전 8시30분께부터 법정 앞에서 자리를 지켰지만, 이 회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변호인단은 선고 결과가 나온 직후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짧게 입장을 냈습니다. 
 
이 회장은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의 안정적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미래전략실의 부정거래와 시세 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아 2020년 9월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1심은 19개 혐의에 모두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 2월 2심도 공소사실 전부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반도체, 미·중 갈등…역량 시험대
 
사법 리스크를 해소했지만, 이 회장 앞에는 실적 부진을 겪던 주력 분야의 성장 동력 회복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특히 회사 전체 실적의 50~60%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가 전략 사업으로 대두됐지만,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저하로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습니다. 33년간 지킨 D램 메모리 시장 1위를 SK하이닉스에 내줬고, HBM3E 엔비디아 퀄테스트 통과도 1년 넘게 감감무소식인 상황입니다.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뉴시스)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 데다, 조 단위의 적자까지 내는 등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당초 2027년으로 계획한 1.4나노 양산을 2029년으로 2년 연기하고 2나노에 집중하는 등 ‘내실 다지기’에 나섰지만, 파운드리 특성상 대형 고객 유치가 필요한 실정입니다. 최고경영자가 대외 활동을 통해 고객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배경입니다. 
 
가전업계와 스마트폰 등 기타 산업도 대내외적인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중국 기업들이 저가 제품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미국은 전방위적인 고율 관세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관세를 내세워 국내 기업들에 현지 투자를 독촉하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각 부서가 자체적으로 대응하기엔 한계가 있는 현안들로, 결국 이 회장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난제들입니다. 홍기용 인천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관세나 미·중 갈등 등 대외 변수에는 그룹 전체가 정보를 공유하고, 생산·배치 전략을 유기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며 “위기 돌파를 위해서는 개별 대응보다 통합 전략을 통한 시너지 창출이 중요한 시점으로, 이재용 회장의 복귀를 통해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의 경우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유치해야 하는 만큼 이 회장이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종환 상명대학교 시스템반도체학과 교수는 “HBM도, 파운드리도 고객을 수주해야 생산할 수 있는 구조로, 결국 고객 확보가 최우선”이라며 “이 회장이 이전부터 네트워크, 인맥 관리를 해온 것으로 안다. 사법리스크 해소를 강조하면서 공격적으로 고객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난 3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제공상계 대표 회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의 발언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M&A, 외부 활동 시동…“초격차 전략”
 
삼성전자의 성장 동력이 정체된 만큼, 이 회장은 신사업 발굴 등 미래 준비에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이 회장의 2심 무죄 선고 이후 미국 마시모의 오디오 사업부, 독일 공조 업체 플랙트, 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 젤스를 인수하는 등 최근 적극적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 회장도 공개 행보를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 2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4·5월에는 일본을 연이어 방문했습니다. 이달 초에는 ‘억만장자 사교 클럽’으로 불리는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의 접점을 넓혔습니다. 
 
사법리스크가 해소된 만큼, 이러한 광폭 행보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무죄 판결은 불확실성 제거라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그동안 사법 리스크는 글로벌 경영 판단과 전략 실행에 제약을 주는 요인이었고, 외부 투자자들에게도 불안 요소로 작용해왔지만 그런 리스크들이 해소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아가 이런 적극적인 투자는 위기 극복을 넘어 장기적 전략 구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 교수는 “미래 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M&A,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은 최고경영자의 결단이 핵심인데, 이 회장이 글로벌 무대에서 삼성을 이끌 수 있게 됐다”며 “위기 극복을 넘어서 삼성의 초격차 전략의 재가동에도 긍정적”이라고 평했습니다. 
 
안정훈·박혜정 기자 ajh7606311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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