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26일 오후 서울역 광장을 지나던 시민들은 철도 승무원 모습을 한 인형탈들이 손을 흔드는 모습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두 인형탈엔 얼굴과 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기다리다 목 빠진 역장'입니다. 인형탈엔 각각 '평양역장', '서울역장'이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있었습니다. 평양역장은 '서울-파리'라고 적힌 열차표를, 서울역장은 '서울-베를린'이라고 적힌 열차표를 행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2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기다리다 목 빠진 역장' 인형탈들이 서있다. (사진=희망래일)
승무원 인형탈들이 서울역에 나타난 건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희망래일'이 진행한 한반도 철길 잇기 캠페인 선언식 때문입니다. 한반도 철기 잇기는 서울과 부산, 목포 등에서 출발하는 철길을 북한의 신의주·나진, 중국의 베이징·텐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르쿠츠크와 이어서 독일 베를린, 포르투 리스본, 영국 런던까지 연결하자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번 선언식의 주제가 '한반도 철길을 잇고, 기차타고 유럽 가자'인 것도 분단을 넘어 대륙으로 가는 평화의 길을 잇자는 취지입니다.
희망래일이 선언식 날짜를 7월26일으로 정한 것에도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2년 전인 1953년 7월27일이 바로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일입니다. '전쟁'을 영원히 멈추게 하고, 평화를 구축하자는 희망을 전하려는 의지입니다.
선언식의 사전 행사에선 얼굴과 목이 없는 승무원 복장의 기다리다 목 빠진 역장들이 등장했습니다. 철도 승무원 모습을 한 인형탈들이 시민들에게 서울에서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열차표, 서울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는 열차표를 나눠줬습니다. 한반도 철길이 이어지면 서울역에서 열차를 탄 승객이 유럽까지 한번에 갈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겁니다. 평양역장으로부터 열차표를 받은 한 시민은 "이게 뭐야 '서울-파리'라고. 하하"라며 신기하다는 듯 웃었습니다. 기다리다 목 빠진 역장들과 같이 사진을 찍는 행인들도 있었습니다.
유라시아 열차 노선도 이미지. (이미지=희망래일)
행사 부스 옆에는 유라시아 열차 노선도가 걸려있었습니다. 노선도에는 서울·강릉·목포·부산역에서 북한과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러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노선 구간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사전 행사 이후 희망래일 관계자와 회원들은 선언문을 낭독했습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 대륙을 달리며 싸웠다"며 "신의주를 거쳐 만주의 벌판과 하얼빈, 상하이를 기차로 오갔던 그 철길은 이제 80년째 끊긴 길이 됐다. 72년 전 7월27일 정전협정 이후 남북은 상시적인 전쟁의 위협 속에 머물러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지금 우리는 대륙으로 향하는 오솔길조차 없다"며 "그래서 한반도 철길을 이어야 한다. 남북 철길이 이어지는 순간, 대한민국은 '고립된 섬'에서 벗어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들은 또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는 단숨에 금강산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 모스크바와 베를린, 파리까지 달릴 수 있다"며 "대륙을 가로지르는 길이 열리고, 한반도가 대륙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철길이 연결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교통과 물류의 세계적 중심지로 도약한다"며 "한반도의 번영과 평화가 성큼 다가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분단된 지 어느덧 80년, 더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며 "대한민국을 도약시킬 '한반도 철길 잇기'를 지금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희망래일 측은 '한반도 철길 잇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겠다는 목표도 드러냈습니다. 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통해 평화와 미래를 만들려는 의지와 계획을 가진 관련 단체들을 모아 국민적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에 정식으로 건의하겠다는 겁니다. 희망래일은 오는 10월을 위원회 구성 목표 시기로 잡았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희망래일 이외에 전국철도노동조합 관계자들도 참석했습니다. 이종선 수석부위원장은 연대 발언을 통해 "우리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 번영을 바라는 마음이 철길을 따라 계속해서 흘렀으면 좋겠다"며 "전국철도노조가 희망래일과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희망래일 측에 따르면, 한반도 철길 연결의 필요성을 전파하는 또다른 단체인 사단법인 평화철도 관계자 일부가 개인 자격으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2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희망래일의 다국적 청년 평화풍물패인 기적소리가 공연하고 있다. (사진=희망래일)
이밖에도 희망래일의 다국적 청년 평화풍물패인 기적소리가 길놀이, 사물놀이, 판굿 등 '평화의 굿' 공연을 하며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희망래일 관계자와 회원들은 한반도기 모형을 들거나 한반도기가 그려진 상의를 입은 채 환호했습니다.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