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산재 판정)(단독)②산재 변호사 10명 중 9명 "소송서 '진료기록 감정' 영향력 축소돼야"

<뉴스토마토>, 산재 전문 변호사 30명 대상 '온라인 설문조사'
응답자 전원 "판사 업무 관련성 판단 때 '감정의 소견' 영향 커"
'감정의 판단, 충실하지 않다'는 74.2%…"기저질환만 우선시"
응답자 "산재보험법 취지, 대법 판례 따라야…감정 '맹신' 안돼"

입력 : 2025-09-11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산업재해 전문 변호사 10명 중 9명은 산재 소송에서 진료기록 감정(鑑定)의 영향력이 축소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소송 때 의사에게 질병과 업무 사이 인과관계를 묻는 감정이 판결을 지나치게 좌우한다는 지적을 뒷받침하는 결과입니다. 질병과 업무 관련성에 관한 감정의(鑑定醫)의 의학적·자연과학적 판단보다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와 대법원 판례에 맞는 법관의 규범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뉴스토마토>는 '불합리한 산재 판정' 기획기사를 준비하면서 지난 4월17일부터 5월8일까지 산재 전문 변호사 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이번 설문조사는 최종연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변호사로부터 자문을 받았으며, 문항과 답변 등을 함께 설계했습니다.)
 
(인포그래픽=뉴스토마토)
 
우선 변호사들에게 '법원이 업무 관련성 판단을 할 때 진료기록 감정의 내용·결과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더니 응답자 전원(30명)은 '진료기록 감정이 미치는 영향이 중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이 가운데 '매우'는 83.3%(25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진료기록 감정의 내용 및 결론이 감정의로서 충실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서 변호사 72.4%(21명)가 '충실하지 않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62.1%(18명), '전혀 그렇지 않다'는 10.3%(3명)였습니다. '보통이다'는 20.7%(6명), '그렇다'는 6.9%(2명)였습니다. '매우 그렇다'를 선택한 응답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진료기록 감정의 내용 및 결론이 감정의로서 충실한 판단을 했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취지로 응답한 21명에게는 그 이유도 함께 물어봤습니다(복수응답 가능). 그랬더니 △감정의가 기존의 건강상태나 개인의 기저질환을 우선시함(76.2%, 16명) △비정량적 요인(업무상 스트레스 등)을 판단하지 않거나 평가절하함(76.2%, 16명)를 가장 많이 선택했습니다.

이어 △회신내용이 부실하거나 소략해 구체적인 판단이 없음(71.4%, 15명) △주치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재해자의 상병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단정함(61.9%, 13명) △행정규칙상 업무상 질병 판단기준을 그대로 적용함(42.9%, 9명) △근로복지공단 자문의 소견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음(28.6%, 6명) △기타(23.8%, 5명)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특정 감정의의 회신이 편향되거나 불성실한 경험 때문에 감정의 채택을 반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엔 '감정의 채택을 반대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80%(24명)에 달했습니다. '없다'는 응답은 20%(6명)에 그쳤습니다. 
 
그런데도 감정은 산재 소송에서 필수 절차로 자리 잡는 모양새입니다. '판사가 진료기록 감정을 먼저 권하거나 신청하도록 지휘하는 사건의 비율은 얼마나 되느냐'라는 질문에 '80% 이상'이라는 응답이 50%(15명)에 달했습니다. 이어 △20% 미만(23.3%, 7명) △20% 이상 ~ 40% 미만(13.3%, 4명) △40% 이상 ~ 60% 미만(10%, 3명) △60% 이상 ~ 80% 미만(3.3%, 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앞서 <뉴스토마토>는 10일자에 보도한 (불합리한 산재 판정)(단독)①의사 한마디에 '산재 판결' 갈린다 기사에서 한 산재 전문 변호사의 발언을 인용해 "법관 인사이동이 많은 3~4월엔 특히 감정의 판단에 기대는 판결이 많다. 산재 사건을 처음 맡은 법관은 제대로 된 판단 기준이 없기 때문"이라며 "감정의 소견이 나오면 그것만 보고선 판결하는 대신 '공단과 합의하라'는 식으로 조정해 소송을 끝내는 판사도 다수"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위의 설문 결과를 본다면, 판사들이 의학적 판단에 기대면서 감정이 산재 소송의 관문이 됐다는 주장은 통계적으로도 방증되는 셈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산재 전문 변호사들은 소송 때 감정의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축소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업무 관련성 판단에서 진료기록 감정의 영향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더니 '축소돼야 한다는' 응답은 93.3%(28명)에 달한 겁니다. '현행이 적절하다'는 비율은 7.4%(2명)였습니다. '현행보다 확대돼야 한다'라고 응답한 변호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감정의의 영향력이 축소돼야 한다고 응답한 이들에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주관식으로도 물었습니다. 주요 답변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취지 및 대법원 판례 등에 의하면 업무 관련성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법원의 규범적 판단으로 처분의 위법성을 다퉈야 한다 △판사들이 진료기록 감정 결과를 거의 맹신하다시피 하는데, 진료기록 감정은 불복할 수도 없다 △의학적·과학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문헌적인 내용도 많이 나와 있고, 현대 과학으로 알 수 없는 병도 많은데 전적으로 감정에 의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등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사실상 산재 소송에서 감정의의 소견은 노동자와 변호인이 전혀 신뢰하지 않는 셈입니다. 오로지 판사만이 감정의 판단에 기대 판결하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노동자를 구제하는 절차보다 질병의 의학적 원인을 따지는 자리로 변질되는 현재의 산재 소송을 개선하고, 근본적으로는 업무상 질병 판단에선 법률적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이번 설문조사를 자문한 최 변호사는 "현재 산재 소송의 진료기록 감정은 노동자가 고액의 감정료를 부담하면서 충실한 감정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며 "최소한 대법원 판결에 충실하도록 개인의 기저질환에 매몰되지 않는 감정, 고용노동부 고시상 기준에만 의존하는 감정, 구체적 이유 없는 감정만이라도 법원이 적극적으로 배척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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