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법인 '법 위반'도 한국 법원서 재판 가능

입력 : 2025-09-08 오후 12:51:00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산업기술을 빼돌린 사실이 적발된 대만 법인에 대해 양벌규정이 적용되는 경우 대한민국에 형사재판권이 존재하므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외국법인의 법 위반도 한국 법원에서 재판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피해 회사는 국내 법인으로 발광다이오드(LED)를 생산하는 업체이고, 피고인 회사는 피해 회사의 경쟁 업체로 대만 법인인 회사입니다. 피해 회사에서 일하던 종업원들은 피고인 회사에 근무하다가 퇴직하면서 영업 및 기술적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경쟁 관계의 제3자를 위해 사용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피고인 회사에 입사해 피해 회사의 산업기술을 유출·공개·사용하거나 영업비밀을 누설·취득하게 한 혐의가 인정됐고 피고인 회사는 양벌규정이 적용돼 기소됐습니다. 
 
1심은 피고인 회사가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피해 회사에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그 영업비밀을 외국에서 사용하거나 외국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면서 피해 회사의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했다는 사실만을 인정해 벌금 50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회사는 △외국 법인인 피고인 회사가 외국에서 한 과실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의 형사재판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점 △양벌규정에 따른 공소사실 기재가 마치 법인의 고의 책임에 기초한 것처럼 돼 있어 공소제기의 절차가 위법해 무효라는 점 △공소장 모두 사실 기재 부분이 공소장일본주의에 위반돼 공소제기의 절차가 위법해 무효라는 점 △종업원의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은 점 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심은 행위의 결과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발생해 재판권이 있고, 공소사실 기재 방식이나 공소장일본주의를 위배한 사실이 없다고 봤습니다. 위반행위 방지를 위한 주의와 감독에 대해서도 종업원들을 채용할 때 기존 회사의 영업비밀 등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징구한 사실만으로 그 주의와 감독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심은 1심에서 산업기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피해 회사의 기술이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정한 산업기술에 해당한다고 봐 피고인 회사의 책임을 더 넓게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2심은 피고인 회사에게 벌금 60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회사는 2심에서도 1심과 같은 주장을 했지만 2심도 1심의 판단이 옳다고 봐 피고인의 항소는 기각했습니다. 
 
대법원은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받는 법인에 대해 대한민국 형벌 규정이 적용돼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는지를 판단할 때 고려할 점을 설시했습니다. 양벌규정에 따라 처벌되는 행위자와 행위자 아닌 법인 또는 개인 간의 관계는, 행위자가 저지른 법규 위반행위가 사업주의 법규 위반행위와 사실관계가 동일하거나 적어도 중요 부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내용상 불가분적 관련성을 지닌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피고인 회사 종업원들 사이의 영업비밀 누설·취득 등에 대한 의사 합치, 이에 따른 산업기술 및 영업비밀 열람·촬영과 영업비밀 무단 유출 행위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이뤄졌으므로 그 밖의 행위가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종업원들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종업원들의 위반행위는 양벌규정이 적용되는 피고인 회사의 범죄 구성 요건적 행위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 종업원들이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이상 피고인 회사도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죄를 범한 것이므로, 피고인 회사에 대해 형법 제2조, 제8조에 따라 대한민국 형벌 규정이 적용된다는 겁니다. 
 
법원은 구체적 범죄에 대해 형법을 적용해 재판 절차를 통한 심판권을 행사하게 되는데 이러한 권한을 형사재판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형사재판권은 대한민국 주권의 일부이므로 그 적용 범위가 문제되는데, 형법 제2조는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에게 형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속지주의 원칙을 규정하고 이 규정은 형법 제8조에 따라 다른 법령에 정한 죄에도 적용됩니다. 따라서 위 사건과 같이 범죄의 일부가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벌어졌다면 외국법인에게도 양벌규정에 따른 처벌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양벌규정은 법인의 대표자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 등 행위자가 법규 위반행위를 저지른 경우, 일정 요건 하에 이를 행위자가 아닌 법인이 직접 법규 위반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평가해 행위자와 같이 처벌하도록 규정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양벌규정에 따른 법인의 처벌은 행위자의 처벌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법인의 직접책임 내지 자기 책임에 기초하는 것으로 봅니다. 법인은 기관을 통해 행위하므로 법인 대표자의 행위로 인한 법률 효과와 이익은 법인에게 귀속돼야 하고, 법인 대표자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법인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양벌규정의 적용 대상이 외국 법인이라도 행위자가 저지른 범죄행위 중 일부라도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이뤄졌다면, 그와 내용상 불가분적 관련성을 지니는 외국법인의 행위 역시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봐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했습니다. 따라서 주로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이뤄지는 영업비밀이나 산업기술의 유출 행위의 특성상 이익을 얻은 외국법인은 양벌규정에 따라 형사적 책임을 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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