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이 이달 말 종료되는 가운데, 한국판 IRA 정책이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어 국내 배터리 산업 전반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과 유럽이 배터리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정책 공백은 글로벌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에서는 호소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37회 세계전기차동차 학술대회 및 전시회(EVS37)'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배터리 모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 IRA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IRA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 OBBBA)’으로 개정함에 따라 이달 30일부로 종료됩니다. 당초 IRA에 따른 보조금은 2032년까지 신규 전기차에 대해 최대 7500달러를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OBBBA 개정으로 보조금 혜택은 완전히 사라지게 됐습니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실적 개선에는 미 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효과가 컸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IRA는 배터리 셀생산에 대해 킬로와트시(kWh)당 35달러, 모듈 생산에는 1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해왔습니다. 이는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의 미국 현지 생산 확대와 수익성 개선에 직접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IRA를 폐지하려는 이유는 재정 부담입니다. IRA에 따른 전기차 보조금과 각종 세액공제로 연간 수백억 달러의 예산이 소요되고 있어,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이 밖에도 ‘미국 우선주의’ 정책과의 충돌로, IRA 혜택을 받는 상당수 기업이 한국과 일본, 독일 등 해외 기업들이어서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이와 유사한 한국판 IRA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내세운 국내 생산을 촉진하는 세제입니다. 이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국가 전략 기술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 또는 소득세 세액을 공제해주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내년도 세제개편안에서는 제외됐고, 관련 법안도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5에서 삼성SDI 부스를 찾은 참관객들이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 보조금 협정 위반과 통상 마찰 가능성을 이유로 도입 시기를 미루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유럽연합(EU), 중국 등 다수 국가가 이미 유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WTO와 EU 역외보조금규정(FSR, Foreign Subsidies Regulation)에서도 원칙적으로 허용되는 정책 수단이라는 것이 업계의 주장입니다.
미국 IRA 혜택 종료와 한국판 IRA 지연이 겹치면서 국내 배터리 산업 생태계 전반에 타격이 예상됩니다. 국내 배터리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 차원의 신속한 정책 지원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노명호 삼성SDI 그룹장은 지난 23일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토론회’에서 “국내 배터리사들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해외에서 보조금을 주느냐, 안 주느냐에 따라 휩쓸리는 상황”이라며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해 리소스(자원)를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고, PTC(생산세액공제), ITC(투자세액공제)를 가리지 않고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박재정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과 과장은 “정부도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며 “내달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