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국어로 번역·출판되지 않은 댄 브라운의 신작 소설 『비밀 중의 비밀』(The Secret of Secrets)은 다시 한번 종교와 과학을 가로지릅니다. 주인공은 이전에 나왔던 『다빈치 코드』나 『천사와 악마』에서처럼 하버드대 상징학 교수 로버트 랭던이지만 이번 소설의 주제는 ‘신의 실재’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실체’입니다.
댄 브라운의 신작 소설 『비밀 중의 비밀』(The Secret of Secrets)에서는 현실로 다가온 여러 과학기술이 등장한다.
신작 소설에서는 2009년에 나온 『로스트 심볼』에도 등장한 바 있는 랭던의 여친이자 노에틱 과학자(noeticist) 캐서린 솔로몬이 인간 의식이 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적 데이터베이스(Akashic Field)와 연결된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브라운은 이 가설을 신비주의의 영역에 가둬두지 않고, 실제 과학계에서 논의 중인 첨단 기술과 실험을 치밀하게 엮어 하나의 ‘허구 같지 않은’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H2M(Human-to-Machine) 인터페이스를 비롯해 소설 안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하나같이 현재 연구 중이거나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거의 현실에 가까워진 가능성”으로 등장한 기술들을 살펴봅니다.
뇌 신호 조절하는 '이온 변조'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이온 변조(ion modulation)’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뇌가 신호를 주고받는 이온 채널의 흐름을 정밀하게 조절하는 기술입니다. 현대 신경과학에서는 우울증, 파킨슨병, 난치성 통증 환자에게 전극을 삽입해 신경신호를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뉴로모듈레이션(neuromodulation)이 실용화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는 그 기술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간질 환자를 대상으로 “의식을 외부 장치로 전달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동기화하는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설정은 허구적입니다. 그러나 스웨덴 룬드대(Lund University), 미국 MIT·하버드대 연구진들이 이미 이온 신호를 전자회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실제로 2023년 <네이처 일렉트로닉스>(Nature Electronics)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유연한 이온전도성 고분자 센서가 사람의 뇌파와 이온 신호를 동시에 측정·조절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브라운의 소설적 상상력은 이와 같이 현실의 한 발짝 앞에서 펼쳐집니다.
2013년 발표된 댄 브라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6년 영화화한 <인페르노>의 한 장면. (사진=컬럼비아픽쳐스)
생명과 기계의 경계, 혼합 이온
소설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핵심기술은 앞에서 설명한 이온 변조를 가능하게 하는 인공물질인 '혼합 이온-전자 전도성 고분자'(mixed ion–electron conducting polymers)입니다. 이 물질은 단순히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자와 이온을 동시에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기적 신호(전자)’와 ‘생체적 신호(이온)’를 동시에 전달하는 재료입니다.
스웨덴 링셰핑 대학(Linköping University) 연구진은 실제로 이런 고분자를 이용해 식물세포를 전기적으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포충성 식물인 ‘비너스 파리지옥(Venus flytrap)’을 언급한 대목은 이 실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술이 확장되면,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이 직접 연결되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브라운은 이 가능성을 ‘의식의 인터페이스’로 상징화하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감정과 기억이 이온의 흐름이라면, 그것을 전자 회로에 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 의식 구성하는 화학물질
이 소설에는 ‘벤지미다조벤조페난트롤린'(Benzimidazobenzophenanthroline)이라는 길고 복잡한 이름의 화학물질이 등장합니다. 이 물질은 단순히 허구의 물질이 아니라 실제 화학에서 고도의 공명구조를 가진 전자전달 분자로 연구되고 있습니다. 이 분자는 전자의 흐름을 안정화하고, 금속 이온과 결합해 고효율 에너지 전달체로 작동합니다. 즉, 생명체의 이온 활동과 인공회로의 전자신호를 이어주는 ‘분자적 매개체’인 셈입니다.소설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의식을 물질화할 수 있는 열쇠로 등장합니다. 현대과학으로 해석하면, 이는 분자 기억 저장체(molecular memory unit)입니다.
뇌에서 기억이 형성되고 저장되는 메커니즘을 분자 수준에서 밝히는 연구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MIT의 맥거번 뇌연구소(McGovern Institute for Brain Research) 연구진은 세포 내 단백질·유전자 발현 변화가 기억 형성에 핵심적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DNA 기반 저장장치, 단분자 트랜지스터, 신경화학적 인공 시냅스 등의 연구가 이미 분자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심리학, 철학, 언어학, 신경과학, 인공지능, 인류학, 심리학 등 인간 의식의 실체를 밝히려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에 기여한 분야를 보여주는 개념도.. 앞으로 물리학과 화학도 포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진=위키피디아)
노에틱스, 신비 또는 과학?
댄 브라운은 전작 『로스트 심볼』에서도 ‘노에틱스(noetics)’라는 학문을 다룬 바 있습니다. 거기서는 인간의 의식이 단순한 뇌 활동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측정 가능한 에너지라는 가설을 다루었습니다.
이번 『비밀 중의 비밀』에서는 노에틱스가 양자생물학(quantum biology)과 나노신경공학을 결합한 형태로 진화합니다. 즉, 인간의 의식이 양자적 공명(quantal resonance)을 통해 다른 존재와 공명할 수 있다는 상상력을 펼칩니다.
현대과학에서도 이미 유사한 연구가 존재합니다. 2020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의 ‘양자 의식 가설’을 비롯해 영국 서섹스 대학 아닐 세스(Anil Seth) 교수의 ‘의식의 예측 부호화 모델’, MIT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 교수의 ‘물리적 의식 이론’ 등입니다. 접근법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인간, 아니 생명체의 의식이 정보적이고 물리적인 현상임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비밀 중의 비밀』에서는 신비주의적이고 종교적인 관습, 상징, 언어가 과학적인 용어로 번역됩니다. 영혼(soul)은 ‘의식 정보'(conscious data), 기도(prayer)는 ‘의도적 공명'(intentional resonance), 창조(creation)는 정보의 ‘파동 붕괴'(wavefunction collapse) 등입니다. 이런 용어들은 단순한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현대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과 물리철학(philosophy of physics)이 진행 중인 방향을 반영합니다.
실제로 하버드 의대의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 교수는 “의식은 뇌가 아닌 정보의 패턴”이라고 말했고, 물리학자 존 휠러(John Wheeler)는 “우주는 관측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댄 브라운은 이러한 과학적 경향을 체코 프라하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번 소설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