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비타민 B2, 금속 만나 인공 효소로

세계 최초 플라빈-금속 결합 성공
KAIST, 에너지·환경 혁신 가능해

입력 : 2025-11-12 오후 7:15:50
“자연 효소의 한계를 넘어선 분자 설계, 생명화학의 새로운 지평.”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백윤정 교수 연구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권성연 박사팀과 함께 비타민 B2(리보플라빈)을 금속과 결합시켜, 인체의 에너지 대사에 쓰이는 천연 보조효소를 ‘금속 기반 인공 효소’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자연 효소보다 안정적이면서 반응 조절이 정밀한 이 인공 효소는 앞으로 에너지 전환, 환경 정화, 신약 개발에까지 응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메탈로플라빈 복합체의 개발 이미지. (사진=Inorganic Chemistry)
 
리보플라빈은 우리가 흔히 비타민 B2로 알고 있는 물질로, 세포 안에서 음식을 에너지로 바꾸는 핵심 조력자입니다. 하지만 그 구조는 질소와 산소가 얽힌 복잡한 고리 형태로 되어 있어,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금속과 결합한 플라빈’을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백윤정·권성연 연구팀, 과학계 난제 풀어
 
백 교수팀은 이 난제를 풀기 위해 플라빈 내부에 금속이 결합할 수 있는 자리를 분자 수준에서 새롭게 설계하고, 금속 이온을 안정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리간드(ligand) 구조를 정밀 배치했습니다. 이런 금속화학적 접근을 통해 전자 이동을 제어하면서도 금속의 반응성을 유지하는 새로운 분자 시스템을 합성했습니다.
 
그 결과 플라빈 고유의 전자전달 기능과 금속의 촉매 반응성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결합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생체 모사 시스템으로, 화학 반응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인공 효소 설계의 첫 단추가 됐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기술이 단순한 화학적 성과를 넘어 ‘친환경 반응 제어 기술’로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금속 기반 인공 효소는 고온·고압이 필요한 기존 산업 촉매를 대체할 수 있어, 에너지 절감과 환경 오염 저감 효과가 기대됩니다. 또 플라빈의 생체 적합성과 금속의 선택적 반응성을 결합하면, 세포 내 특정 반응을 표적 조절하는 신약 설계에도 응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백윤정 교수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플라빈의 한계를 넘어 생체 분자를 금속화학의 구성 요소로 확장한 것”이라며 “차세대 촉매와 에너지 전환 소재 설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연구”라고 평가했습니다. 
 
미국화학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무기화학지 표지논문 선정 사진. (사진=KAIST)
 
환경·에너지·신약 개발로 확장 가능

이번 연구는 KAIST 화학과 니투 싱(Neetu Singh) 박사와 임하늘 석박사통합과정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이 연구 성과는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무기화학지(Inorganic Chemistry)> 11월 5일 표지 논문으로 게재됐으며, ACS가 발행하는 90여 종의 저널 중 하루 한 편의 대표 논문만 선정하는 ‘ACS Editors’ Choice’에도 뽑혔습니다. 해당 연구는 과기정통부가 지원하는 개인기초연구사업의 ‘우수신진연구’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원하는 ‘소재부품개발사업’ 과제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습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권성연 박사는 “이번 연구는 자연 효소의 한계를 넘어선 인공 시스템 설계의 시작점”이라며 “전자를 이용한 에너지 전환, 환경 독성물질 분해, 신소재 합성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생명과 무기화학의 경계를 허문 융합 연구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이 연구가 앞으로 탄소중립 시대의 에너지 시스템 설계나 의약용 생체촉매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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