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흡연 단속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서울 도심, 흡연자들이 점령한 보행로
비흡연 시민의 ‘혐연권’은 어디로 갔나

입력 : 2025-11-12 오후 7:15:10
서울 광화문, 종로, 을지로 일대는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도심의 대표적 보행축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보행자들이 담배 연기를 피해 몸을 틀어 걸어야 합다. 보도가 넓은 건물 입구 앞, 가게 전면 공간, 건물 사이 공간들이 사실상 ‘노상 흡연구역’으로 변해 있습니다. 금연 표지판이 곳곳에 새겨져 있지만 아무런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실내 금연은 정착됐지만, 실외의 무질서는 방치된 채 시민의 혐연권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서 버젓이 연기를 내뿜는 흡연자들. (사진=임삼진)
 
새문안로 인근 한 빌딩 앞. 많은 보행자들이 오고가는데도 수십명의 직장인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웁니다.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흘러가며 보행자들이 불쾌감을 느끼며 걷거나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를 기다립니다. 
 
이 근처에서 일한다는 직장인 김성환(54)씨는 “횡단보도 주변에서 저렇게 십여 명이 늘 담배를 피우고 있지만 단속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힘들어 하고, 아이들과 노약자들도 함께 지나가는데 아무 제지가 없다”라며 불편함을 하소연합니다. 2019년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연구팀의 간접흡연 실태조사에서는 간접흡연의 주요 경험 장소로 길거리(96%)가 가장 많았습니다. 금연 표지는 있지만 사실상의 흡연 천국 상태입니다. 
 
서울 금연구역 30만 곳,  단속 인력 120명
 
서울시는 ‘국민건강증진법’과 ‘서울시 금연구역 지정 조례’에 따라 광장, 공원, 버스정류장, 학교 주변 등 2025년 6월 기준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총 30만1063곳입니다. 위반하면 개인에게는 과태료 10만원, 시설주에게는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정은 지정일 뿐, 현실에서 보이는 금연 상황은 전혀 다릅니다. 서울시 전체 금연지도원이 약 120명에 불과해, 1인당 수천 곳의 금연구역을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사실상 ‘계도 위주’로 운영되며, 현장 단속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상시 순찰은 불가능하다”며 “주민 신고가 들어오면 현장을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털어놓았습니다. 
 
특히 재개발을 앞둔 가게 주변이나 공사장 주변은 사실상 흡연 성역입니다. 점포 전면은 사실상 사유지와 공공보행로의 경계선에 놓여 있어 행정기관의 단속 권한이 모호합니다. 
 
광화문, 종로, 을지로 일대에서는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 앞 의자 주변이 흡연자들의 ‘상습 군집’이 된 곳이 많습니다. 일부 매장은 금연 표지판을 붙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한 식당 주인은 “저렇게 가게 앞에서 진을 치고 상습적으로 피우는데도 단속이 없으니 영업에 큰 지장을 준다”며 “민원 제기해봐야 와서 스티커를 붙이고 가는 게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금연구역의 실효성이 떨어지면서 보행자는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습니다. 특히 호흡기 질환자나 아동, 노약자 등 간접흡연에 취약한 사람들은 그들을 비껴간다고는 하지만 연기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흡연 성역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금연 행정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불시 단속이 이뤄지고 벌금을 물리면 그곳에서 계속 담배를 피울 간 큰 직장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시민들의 이야기는 적극적인 금연 행정을 강하게 요구하는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서울 금연구역은 30만곳이지만, 단속 인력은 120명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금연구역 단속 전담반이 단속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도쿄·구리·안산·대구의 성공 사례
 
도쿄 치요다구(千代田?)는 2002년부터 도심 보행로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위반 시 과태료 2000엔을 즉시 부과하고, 순찰 인력을 투입해 거리 질서를 바꿨습니다. 지금은 흡연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주변 시민들이 먼저 제지할 정도로 문화가 정착됐습니다. 싱가포르는 공원·해변 등 실외 공공장소에서의 흡연을 금지하면서 지정 흡연구역(DSA)을 설치해 흡연 동선을 통제합니다. 규정을 어길 경우 과태료 200싱가포르달러(약 20만원)가 부과됩니다.
 
경기도 구리시는 상습 민원이 발생하던 골목을 3년에 걸쳐 ‘시민 참여·주도형 금연벽화거리’로 조성해 물리적·심리적 환경을 바꿨습니다. 또 학원가나 농수산물도매시장처럼 민원이 집중되는 곳을 대상으로 합동단속을 시행했는데 이 단속에는 금연 지도원, 공무원뿐만 아니라 경찰, 민간(공사 직원)까지 참여해 단속의 지속성을 확보해 실효성을 높였습니다. 
 
안산시, 대구시 등이 도입한 ‘금연벨’도 효과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시민이 벨을 누르거나 QR코드·앱을 작동하면 “이곳은 금연구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즉각 송출됩니다. 단속 공무원과 흡연자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면서 비흡연자가 즉각적으로 혐연권을 행사하는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미세먼지, 소음, 쓰레기와 함께 ‘거리 담배연기’도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환경공해입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흡연권'을 주장하지만, 이 법적 논쟁은 이미 종결되었습니다. 헌법재판소와 현행법은 혐연권이 흡연권보다 우선하는 상위의 기본권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흡연권이 사생활의 자유에 기반한다면, 혐연권은 사생활의 자유뿐만 아니라 ‘생명권’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헌법재판소 역시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금연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국민 공동의 공공복리를 위한 정당한 제한이며,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과잉금지원칙이나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습니다. 
 
“연기 없는 도시”는 불가능한 꿈?
 
지난 2016년 서울시의 성공 사례는 ‘집중 단속’의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당시 ‘금연도시 서울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하철 출입구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9월 한 달간 2800건 이상(9월 첫 주 932건, 9월 추가 1662건, 10월 1181건)의 집중 단속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는 출입구별 시간당 흡연자가 39.9명에서 5.6명으로 86.1%나 격감했습니다. 이는 현재 서울시의 단속 부재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성공적인 ‘집중 단속 의지’를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문제는 법과 제도는 있지만, ‘집행하지 않는 행정력’입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영등포구에서만 7500여 건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일부 예외는 있지만, 그것이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서울의 핵심 가로에서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한, 서울의 거리는 흡연자들의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은 예절이 아니라 시민의 건강권과 보행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사회계약입니다. 서울이 ‘연기 없는 도시’로 나아가려면, 이제는 단속이 ‘보이지 않는 법’에서 ‘보이는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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