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공시제 비켜간 회장님…대량 매도 후 급락

신대양제지, 자사주 소각 기대로 신고가 달리다 ‘뒤통수’
권 회장, 공매도 과열 공시 직전 매도…‘1% 미만’ 사전공시 피해
2년 전엔 본인 매수 후 자사주 매입 계약

입력 : 2025-07-30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자사주 소각 기대감을 안고 급등했던 신대양제지 주가가 최대주주의 지분 매도 소식에 급락했습니다. 사전공시 의무 기준에 소폭 미달하는 양이었던 탓에 사상 최고가 랠리를 즐기던 주주들은 예고 없이 날벼락을 맞았습니다. 하필 대주주 매도 직후 공매도 과열 종목으로도 지정됐습니다. 주주들은 대주주의 과거 매매 전력을 상기하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평가 가치주, 빛 보나 했는데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신대양제지는 이날 230원 오른 1만400원으로 거래를 마감, 급락 후 눈치보기 끝에 전일의 낙폭을 그대로 돌려놓았습니다. 
 
신대양제지는 이달 초순까지 신고가 랠리를 펼치다가 지난주 급락했습니다. 지난 14일 1만5220원으로 1995년 상장한 이래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그에 앞서 9일 장중엔 1만5800원을 찍기도 했습니다. 
 
신대양제지는 골판지 원지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골판지 원지부터 택배상자 제조에 이르기까지 골판지 상자에 특화된 대양그룹의 지주회사 노릇을 하는 기업입니다. 주식 투자자들에겐 알짜 저평가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엔 감소했으나 연간 500억~6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꾸준히 올릴 능력이 있고 자본금도 6000억원 가까이 쌓여 있는데 시가총액은 2000억원도 안 돼 각종 투자지표들이 저평가를 가리켰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신대양제지의 주가수익비율(PER)은 6.57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35배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함께 상법 개정과 자사주 소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가에 불이 붙었습니다. 신대양제지는 전체 발행주식의 26.67%에 달하는 자사주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최대주주인 권혁홍 회장(16.41%)과 아들 권택환 부회장(13.75%), 권 부회장의 개인회사인 신대한판지(13.78%) 등 최대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59.78%에 달해 유통주식이 많지 않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에 법 개정을 통한 자사주 소각 가능성은 물론 이를 회피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동원해 자진 상장폐지할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주가가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올해 첫날 5710원으로 출발했던 주가 앞자리엔 1만원이 더 붙었습니다. 
 
권혁홍 신대양제지 회장. (사진=뉴시스)
 
회장님의 차익 실현?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주가가 대주주 매도로 갑자기 꺾였습니다. 신대양제지는 23일 장마감 후 최대주주 소유주식 변동신고서를 공시했습니다. 권 회장의 주식이 33만주 감소해 694만주에서 661만주로 변경됐다는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거래 내용은 이틀 뒤 25일에야 권 회장 명의의 공시로 밝혀졌습니다. 주당 1만1440원에 시간외매매 블록딜이었습니다. 공시는 이게 전부였지만 23일 투자자별 매매 내역에는 개인이 팔고 외국인이 순매수한 것으로 기록돼 권 회장의 지분이 외국인에게 넘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대주주가 발행주식의 1%를 넘는 주식 또는 거래금액 50억원 이상의 주식을 매매할 때는 매매 예정일 최소 30일 전에 거래 목적과 수량을 사전에 공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권 회장이 판 33만주는 신대양제지 전체 주식의 0.82%로 기준에 미달합니다. 거래금액 역시 38억원에 못 미쳐 사전공시 의무는 없습니다. 
 
신대양제지 측은 권 회장의 지분 매도 사유를 “회장님의 개인적인 이유”라고 답변했을 뿐 별다른 입장은 내지 않았습니다. 
 
최대주주가 33만주를 팔았지만 경영권엔 흔들림이 없습니다. 특히 지난달 11일엔 권 부회장이 지배하는 신대한판지가 머스트자산운용으로부터 141만8792주를 사들여 신대양제지 지분을 13.78%로 늘렸습니다. 권 부회장의 실질 지배력이 27.5%로 높아진 것입니다. 
 
사전공시 없이 나온 매도였기에 피할 수 없었던 주주들로선 화가 날 법합니다. 특히 이들은 신고가 랠리 중의 권 회장 매도가 하필이면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 직전에 나온 것을 의심하는 눈치입니다. 실제로 23일과 24일 신대양제지엔 공매도가 집중되면서 양일간 각각 9.36%, 19.56% 연거푸 급락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권 회장은 2023년 5월 차액결제거래(CFD) 반대매매로 주가가 폭락할 당시 신대한판지와 함께 각각 55만주, 61만주를 장내에서 사들인 적이 있습니다. 6230원에 주식을 산 뒤 7월에는 100억원어치 자사주 취득 신탁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과반을 넘는 상황이었기에 경영권보다는 주가 하락 방어 목적이었겠지만, 본인이 주식을 매수한 후 자사주 매입을 결정해 일부 투자자들의 의심을 산 터였습니다. 이들의 눈에 이번 권 회장의 매도가 곱게 보일 리 없습니다. 
 
승계+자사주 처리 맞물려 
 
무엇보다 신대양제지는 84세 고령인 권 회장에서 아들 권 부회장으로의 승계와 자사주 소각이라는 두 가지 큰 이슈를 안고 있습니다. 권 부회장의 실질 지분율은 이미 27.5%에 달해 어느 주주보다 높지만 권 회장의 지분을 승계받아야 해 상속·증여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26.67%에 달하는 자사주 이슈도 풀어야 하는데요. 정부가 자사주 소각을 추진 중이어서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소 신대양제지 대주주와 경영진이 일반주주들에게 보여준 행동을 감안하면 순순히 자사주를 소각할 거라 기대하긴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신대양제지가 지난달 2일에 제출한 기업 지배구조 공시, 지배구조 준수 현황을 보면 15개 핵심 지표 중에서 이행 중인 것은 △이사회 구성원 전원이 단일성(남성)이 아닐 것 △내부 감사기구에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 존재 △경영 관련 중요 정보에 내부 감사기구가 접근할 수 있는 절차 마련 등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주총 4주 전 소집공고, 전자투표 도입, 승계 정책 마련 및 운영 등 나머지 대부분은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사주 소각보다는 상장폐지를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많습니다. 현재 최대주주 일가와 자사주를 더한 지분율은 86.4%에 달합니다. 여기에 추가로 9%포인트, 약 360만주만 더 확보해도 상장폐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갑자기 최대주주가 주식을 매도했으니 그 배경이 무엇인지를 두고 갑론을박 중입니다. 단순한 차익 실현은 차라리 괜찮지만, 확보한 자금을 다른 일에 쓸까 우려하는 눈치입니다. 일각에선 주식을 또 매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지만, 사전공시제도는 이런 꼼수를 방지하기 위해 1년간 누적 거래를 합산해 1%, 50억원을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권 회장이 1년 내 추가로 대량의 주식을 매도하려면 이번엔 사전공시를 피할 수 없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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