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청구서 '깜깜이'…한·미 협상 2R

3박6일 방일·방미 순방 마무리…한·미 회담 '명문화' 못 미쳐
'돌발 변수' 추후 실무 테이블로…동맹 현대화 압박 거셀 듯

입력 : 2025-08-27 오후 4:39:59
 
[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3박6일간의 숨 가빴던 방일·방미 순방 대장정이 마무리됐습니다. 취임 후 80여일 만에 소화한 한·일, 한·미 정상회담은 이재명정부가 목표로 한 소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하지만 한·미 협상은 2라운드에 접어들게 됐습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지난달 31일 성사시킨 한·미 관세 협상의 큰 틀을 확인하고, '돌발 변수'만을 막아낸 데 그쳤기 때문인데요.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의 '구체성' 등 미국이 동맹국을 향해 제시할 '청구서'의 실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통상과 안보라는 양 축에서의 불확실성이 한국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전망입니다.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6일(현지 시간)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서 공군1호기에 탑승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절반의 성공…실무 협상 '난항' 예고
 
26일(현지시간) 이 대통령은 일본 및 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미국 필라델피아 국제공항에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뒤 바로 다음 날 방미 길에 올라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순방은 한·미 관세협상의 여파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만큼이나 이목을 끌었습니다. 대통령실 3실장(비서·안보·정책)의 급파와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직전 '돌발 메시지'가 정상회담의 긴장도를 높였지만, 이 대통령이 받아 든 성적표는 긍정적입니다. 
 
이른바 '칭찬 외교'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발 변수'를 막아 냈고, 우리 정부가 원하는 흐름대로 진행됐다는 내·외신의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한·미 관세협상이 지난달 31일 타결됐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양측은 세부 과제에 대한 조율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아직 미국은 '진짜 청구서'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미 양측은 관세협상과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제시된 의제를 포함해 추가 협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 과정에서 미국의 거센 압박이 전개될 전망입니다. 
 
우선 통상 분야에서의 핵심 의제는 3500억달러 대규모 투자펀드 조성입니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투자펀드 기금 구조와 운영 방식의 윤곽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얼마나 출자하고 어떤 방식으로 운용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불투명한 셈인데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양국이 구속력 없는 양해각서(MOU) 형태로 운영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은 3500억달러 투자펀드 조성에 있어 대출과 보증 방식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직접 투자를 늘릴 것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상회담에서 투자펀드 조성의 세부 사항을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은 문안 조율의 이견이 있다는 점을 방증한 것이란 해석이 나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곳곳서 '뇌관'…비관세 관건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안들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미국은 시장 개방을 원한다. 우리 농민과 제조업자, 혁신가를 위해 시장을 계속 개척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추가적 시장 개방 요구를 예고한 겁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관련한 논의가 없었고, 쌀·소고기 등의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양보할 수 없는 '레드라인'(한계선)에 해당한다는 입장입니다. 양국의 온도 차로 인해 추가 협상 과정에서 갈등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리스크는 '비관세 장벽'입니다. 2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디지털 시장 규제는 전부 미국 기술에 피해를 주거나 차별하기 위해 설계됐다"며 "차별적인 조치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우리의 경우 온라인플랫폼법(온플법) 제정과 구글 정밀 지도 반출 제한 등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사정권에 들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43명은 이를 막아 달라는 서한까지 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청구서도 제시했습니다. 그는 "알래스카 가스전과 관련해 한국과 합작회사(Joint Venture·JV)를 추진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김 정책실장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실무적 논의는 아직 없다"며 선을 그은 상태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방명록 서명을 준비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어막' 된 국방비 증액…안보 청구서 '대기 중'
 
이번 회담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안보 분야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기지 소유권 이전 문제를 거론하기는 했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 등 안보 영역에서의 압박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이 대통령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초청 강연에서 국방비 증액을 공식화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 요구하는 '동맹 현대화'를 우리 측이 일정 부분 받아들이면서 변수를 막은 셈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 청구서'가 완벽히 정리된 건 아닙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에서 "한국은 우리 군사 장비의 큰 구매 국가"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이는 구체적 액수가 제시되지 않은 국방비 증액과 연계될 가능성이 큽니다.
 
동맹 현대화의 한 측면인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도 추후 요구될 전망입니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이 중국 견제에 집중하고, 한국 등 동맹국은 자국 방위에 책임을 부담하라는 요구입니다. 결국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로 확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 추후 실무 협상을 통해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BBC>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적 이견 노출을 가까스로 피한 것"이라며 청구서가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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