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뉴스토마토 강영관 기자] 정부가 산업재해 처벌을 대폭 강화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연간 사망자가 3명 이상 발생한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물리고, 건설사의 경우 최근 3년간 산재로 인한 영업정지가 세 차례 이상이면 건설업 등록 자체를 말소한다는 내용이다. 현장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노동자 대표에게도 작업중지권을 부여했다. 현장은 곧장 술렁였다. 건설사 대부분은 영업이익률이 대체로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불황으로 적자를 기록하는 업체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이익의 5% 과징금은 기업 존속을 위협할 수준임은 분명하다. "사실상 기업 문을 닫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반발도 나온다. 다만 다른 한편으로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산재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건설업은 하도급 구조가 복잡하고, 공사 과정에서 수많은 협력업체가 얽힌다. 여기에 인력 구조의 변화가 사고 위험을 키우고 있다. 청년층의 기피로 현장은 고령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9~2023년 건설업에서 업무상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2061명이다. 이 가운데 60세 이상이 900명으로 43.7%를 차지했고, 50세 이상까지 합치면 무려 78.6%에 이른다. 외국인 노동자 사망도 꾸준히 늘어 2021년 42명에서 2023년 55명으로 증가했다. 이들 다수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고령과 경험 부족, 언어 장벽이 결합한 구조적 취약성이 그대로 통계로 드러난 것이다.
저가 공사 문제는 산재의 또 다른 근원이다. 국토안전관리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공공건설 현장의 80%는 낙찰률 90% 미만의 저가 공사였다. 발주처가 정한 적정 공사비보다 낮은 금액에 수주한 시공사는 안전관리 인력과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숙련공 대신 저임금 비숙련공을 투입하고, 검증된 최신 장비 대신 구형 장비를 사용한다. 하도급이 반복될수록 실제 현장에 투입되는 예산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가장 말단의 작업자가 쪼그라든 비용 속에서 위험을 떠안는다. 산업재해는 이 모든 왜곡이 겹친 결과다.
이처럼 복잡한 구조적 원인을 외면한 채 처벌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근본적 변화가 어렵다. 과징금은 억제 효과를 가질 수 있지만, 안전 문화는 제도와 투자, 협력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저가 낙찰 구조를 바로잡아 적정 공사비를 보장해야 한다. 공사비 절감이 곧장 안전 예산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지 않고서는 어떤 처벌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고령·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맞춤형 교육과 안전 장비 지원도 절실하다. 기업이 안전 관련 예산을 임의로 줄이지 못하도록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안전 예산에 배정하는 방안 역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생명은 기업의 이윤보다 앞선다. 산업현장의 노동자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자 사회의 일원이다. 안전하게 퇴근할 권리를 지키는 것은 단순한 개인적 권리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간을 지키는 일이다. 목숨을 값싸게 취급하는 경영은 결코 기업 경쟁력이 될 수 없으며,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강한 처벌만큼이나 시급한 것은 저가 공사 구조 개선, 안전 예산 의무화, 고령·외국인 노동자 지원 같은 구체적 제도다. 처벌은 출발점일 뿐이다.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이번 대책도 또 하나의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 업계와 노동계,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속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반복되는 비극을 끊는 유일한 길이다.
강영관 기자 kw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