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에도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한·미 관세 협상의 '줄다리기'가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에 따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이전 타결이라는 우리 정부의 목표도 실현될 전망입니다. 특히 '이견 해소'라는 미국의 공식 반응이 나오면서, 실무 협상이 사실상 최종 문안 조정 단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16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워싱턴D.C.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경제·통상 '기류' 변화…"10일 내 기대"
15일(현지시간) 양국 경제 수장들은 연달아 한·미 관세 협상의 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습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양측 이견이 해소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견이 해소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서 "우리는 현재 논의 중이며 앞으로 10일 내로 뭔가를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워싱턴D.C.에 도착해 "계속 빠른 속도로 서로 조율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하는 미국 출국길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10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한·미 관세 협상의 '난항'을 토로하며 '신중론'을 펼치던 정부의 메시지가 변화한 겁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미국에 '수정 대안'을 제시했지만, 미국 측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시간으로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미국 측에서도 '의미 있는 대안'으로 답하며 협상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한·미는 지난 7월 말 상호 관세를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대신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에 합의했습니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이 있었지만, 문서화된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했고 대미 투자 이행 방안을 놓고 이견이 지속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3500억달러의 직접투자가 외환 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협상 테이블에 올렸고, 미국 정부에서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전환점이 마련됐습니다.
우리 정부 경제·통상 라인 수장들의 워싱턴D.C. 총결집도, 순조로운 협상 진행 상황을 뒷받침합니다. 이날 출국한 김용범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미국에 도착하는 대로 백악관 관리예산국(OMB)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OMB는 미국의 재정 운용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관세 협상 양해각서(MOU) 최종 문안 작성 조율 단계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현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구 부총리도 카운터파트너인 베센트 장관을 만난 뒤, OMB 논의에 합류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실은 이날 대변인실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한·미 간 관세 협상에 있어 주요 쟁점에 대해 이견을 좁혀 나가는 과정에 있다"며 "정부 측은 국익 최우선 원칙에 따라 미 측과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APEC 정상회의를 10여일가량 앞두고 협상의 속도를 올리고 있는 만큼, 실무 협상은 조만간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에서 최종 합의가 예상됩니다. 이와 관련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APEC 정상회의)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평화 정상회의에서 '가자 평화선언'에 서명한 후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뉴시스)
변수는 '트럼프'…미·중 갈등까지
한·미 경제·통상 라인의 '훈풍'에도 여전히 변수는 남아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한국 모두 서명했다. 한국은 3500억달러를 선불로, 일본은 6500억달러에 합의했다"고 말했습니다. 실무 협상이 3500억달러의 직접투자가 어렵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입장을 고수한 셈입니다.
결국 이달 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매드맨)'을 어떻게 방어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지난 8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변수가 우려됐지만, 이 대통령이 '피스 메이커(평화 중재자), 페이스 메이커'(보조자)론을 펼치면서 방어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또 협상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최종 합의 과정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문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이행 방안의 세부 내용에서의 '결과물'이 중요한 실정입니다. 위 안보실장은 한미 간 무제한 통화스와프 제안과 관련해 "진전이 없다"고 전했습니다. 중국이 한·미 조선업 협력 상징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직접 겨냥하면서, 미·중 관세 협상의 진전도 한·미 관세 협상에 여파를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