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웨스턴대의 슈퍼에이징 프로그램에 참여한 슈퍼에이저들. (사진=노스웨스턴대)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노화는 기억력 감퇴를 동반하는 당연한 과정일까요.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이 통념을 깨뜨렸습니다. 연구팀은 지난 25년간 80세 이상 노인 중 50대 수준의 기억력을 유지한 사람들을 추적하며 그들의 뇌를 연구해왔습니다. ‘슈퍼에이저(SuperAger)’라 불리는 그들로부터 “나이를 먹어도 뇌는 젊게 남을 수 있다”는 결론을 과학으로 확인했습니다.
“노화의 운명을 거스른 뇌, 두 가지 방패 있었다”
노스웨스턴대 산드라 와인트럽(Sandra Weintraub) 교수는 “슈퍼에이저의 뇌는 두 가지 방식으로 노화를 거부한다”고 설명합니다. 우선은 저항성(resistance)으로 슈퍼에이저의 뇌에는 알츠하이머병 주범인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아예 쌓이지 않습니다. 다음은 회복력(resilience)입니다. 그들의 뇌는 단백질이 쌓이더라도 뇌세포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뇌는 80세라는 나이를 믿기 어려울 만큼 구조적으로 젊다”고 말합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슈퍼에이저 프로젝트에는 총 290명이 참여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들을 대상으로 매년 기억력 검사와 뇌 영상 촬영을 실시했습니다. 핵심 평가지표는 ‘15단어 지연 회상 테스트’입니다. 일반적인 80대는 평균 5개 단어를 기억하지만, 슈퍼에이저들은 9개 이상을 정확히 떠올렸습니다.
부검된 77명의 뇌는 더 놀라웠습니다. 대뇌 피질이 거의 얇아지지 않았고, 판단과 동기·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은 젊은 성인보다 더 두꺼웠습니다.
대부분 외향적이고 사회적인 성향
이들의 공통점은 단지 뇌 구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성격이 대부분 외향적이며, 친구·가족과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타마르 게펜(Tamar Gefen) 교수는 “사회적 연결은 뇌 건강의 정서적 비타민”이라며 “고립된 노년보다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삶이 신경세포를 자극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뇌가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슈퍼에이저들의 뇌에는 사회적 직관과 공감에 관여하는 폰 에코노모 뉴런(von Economo neurons)이 일반 노인보다 많았습니다. 기억을 담당하는 내후각피질(entorhinal cortex) 뉴런의 크기 역시 컸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슈퍼에이저들은 생전 매년 검사에 응했고, 사후에는 자발적으로 뇌를 기증했습니다. 게펜 교수는 “그들의 헌신 덕분에 사후에도 연구가 계속된다”며 “뇌 기증은 일종의 ‘과학적 불멸(scientific immortality)’”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노화=기억력 저하’ 공식이 깨졌다
이번 결과는 노화에 따른 인지 감퇴가 불가피한 운명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슈퍼에이저의 뇌는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뇌세포를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와인트럽 교수는 “이제는 ‘예외적인 노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노화를 경험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며 “이들의 생물학적 비밀이 치매 예방 전략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연구진은 ‘뇌가 늙지 않는 노인’ 슈퍼에이저의 비결을 찾기 위해 다양한 코호트 및 중재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국가 치매 역학 조사인 KLOSCAD(Korean Longitudinal Study on Cognitive Aging and Dementia)는 2009년부터 6000여명의 노인을 추적해 노화와 치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한국형 인지예비력 평가 모델의 기초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화여대 연구팀이 61~93세 고령자 153명을 추적한 결과, 슈퍼에이저 기준을 충족한 사람들의 뇌 연령이 실제 나이보다 현저히 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에서도 ‘노화 저항성’ 패턴이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된 셈입니다.
아주대·한양대 등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60~79세 인지 저하 위험군에게 24주 동안 운동·인지 훈련·영양·사회활동을 결합한 다중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실험군의 백질(white matter) 건강이 유의미하게 향상됐습니다. 연구팀은 “단일 요법보다 복합적 생활습관 중재가 뇌 건강을 지키는 열쇠”라고 강조합니다.
“혼자보다 함께할 때, 뇌가 젊어진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정신적 자극이 약보다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행동이야말로 뇌의 ‘예비력’을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서, “노년기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수록 인지 저하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KLOSCAD 자료에서도 ‘사회적 고립’ 이 치매 발생 위험을 약 1.5배 높인다는 결과가 보고됐습니다.
슈퍼에이저가 되는 공식은 없지만 사회적 교류, 지속적인 학습, 규칙적 운동, 혈관 건강 관리 등이 노년기의 뇌를 지키는 실질적 방패입니다. 뇌를 젊게 쓰는 습관을 만드는 것이 노화를 막는 최고의 치료제라는 것입니다.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 그 어떤 노력보다 슈퍼에이저가 되는 길일 수 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