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뇌와 심한 알츠하이머 뇌. (사진=NIH)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영국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는 이번주 “알츠하이머를 걱정한다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10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단순한 노화에 따른 기억력 저하와 치매성 인지장애를 구분하는 핵심 포인트를 소개했습니다. 존스홉킨스의 정신노년의학 권위자 피터 라빈스(Peter Rabins) 박사는 “65세 이상 인지장애 환자의 약 4분의 1은 1년 안에 증상이 자연 회복되지만, 나머지는 알츠하이머의 전조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합니다.
라빈스 박사는 Is It Alzheimer’s?(알츠하이머인가?)와 The 36-Hour Day(36시간의 하루)의 저자로, 지난 50년간 수천 명의 치매 환자를 진료해온 전문가입니다. 그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노인의 ‘건망증’은 자연스러운 노화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명백한 뇌 질환으로 인식된다”며 “문제를 인식하는 시점이 너무 늦다”고 지적합니다.
기억보다 ‘집중·조직 능력’이 먼저 흔들려
라빈스 박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의 초기 징후는 단순 기억력 감퇴보다 ‘집행 기능’의 저하로 먼저 나타납니다. 예컨대 요리 순서를 혼동하거나 계산서 정리를 어려워하고, 오랫동안 하던 가계부 정리를 중단하는 경우입니다. 특히, 오랜 세월 익숙했던 일상 기술(요리, 청소, 재정관리)을 갑자기 어려워하기 시작했다면 단순 피로나 노화로 넘기지 말고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연구진도 2023년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에서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의 70%가 단순 기억력보다 복합 과제 수행력 저하를 먼저 경험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약물, 음주, 수면 패턴도 주요 변수
라빈스 박사는 일부 약물의 항콜린성(anticholinergic) 작용이 일시적 인지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심장, 폐, 불안, 요실금 치료제 등에서 흔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고령층의 음주 습관 변화도 혼돈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70~80대는 알코올 대사 능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과거의 ‘맥주 세 잔’이 노년기엔 여섯 잔에 해당하는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수면 패턴 역시 뇌 변화의 중요한 지표입니다. 평생 ‘아침형 인간’이던 사람이 늦잠을 자거나, 불면·낮잠이 반복되면 인지장애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 수면의학센터는 지난해 <JAMA 신경학(JAMA Neurology)>에 발표한 논문에서 “수면 중 베타아밀로이드 제거가 저해되면 뇌내 축적이 가속화돼 알츠하이머 위험이 커진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성격이 변했다면, 뇌가 바뀐 것”
정신의학자들은 성격 변화야말로 가족이 놓치기 쉬운 조기 신호라고 말합니다. 지나치게 까다롭던 사람이 느긋해지거나, 반대로 사소한 일에 예민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라빈스 박사는 “성격이 ‘좋아졌다’고 가족이 안심한 사례가 있었는데, 그것이 전두엽 기능 저하로 인한 감정 조절력 상실의 결과였다”고 임상사례를 기억합니다.
이는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2022년 미국과학원회보(PNAS)에서 밝힌 “전두엽의 미세한 대사 저하가 공감능력과 자기통제력 변화를 유발한다”는 결과와 일치합니다.
불안·무기력·흥미 상실, 뇌의 구조적 신호
갑작스런 우울감이나 활동 흥미 상실 또한 단순 심리 문제가 아니라 신경퇴행성 변화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지신경과학연구소는 지난 2023년 <Brain>에 “70세 이후 새로 발생한 우울증의 40%는 해마(hippocampus) 위축과 관련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라빈스 박사는 “손주들과의 놀이, 독서, 취미활동에 흥미를 잃는 것은 단순한 나이 탓이 아니라 알츠하이머의 시작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많은 임상경험을 토대로 라빈스 박사가 정리한 치매와 단순 노화를 구분하는 질문 10가지를 텔리그래프가 소개했습니다.
알츠하이머 전조 의심할만한 10가지 자가 점검 질문
1.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2. 평소 잘 해내던 요리를 하기 힘들어하거나 숫자에 능숙했음에도 재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나요?
3. 조직적인 작업(예: 식사 준비나 손님 접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4. 복용 중인 약물은 무엇인가요?
5. 여러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나요?
6. 음주량은 얼마나 되나요?
7.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나거나, 더 여유로워졌나요?
8. 예전에는 전혀 걱정하지 않던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가?
9. 수면 패턴이 변했나요?
10. 예전에 즐기던 활동을 더 이상 즐기지 않나요?
알츠하이머, 피 한 방울로 확인 가능해진다
현재 알츠하이머의 최종 확진은 뇌 MRI, PET, 혹은 뇌척수액 검사로 이뤄지지만, 차세대 혈액검사 ‘플라즈마 p-tau217’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검사는 알츠하이머의 핵심 단백질인 아밀로이드(β-amyloid)와 타우(tau)의 비정상적 축적을 감지합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연구진이 2024년 <Lancet 신경학(Lancet Neurology)>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p-tau217 수치는 PET 스캔 결과와 90% 이상 일치했으며, 혈액 한 방울로도 질환 진행 단계를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아산병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등이 동일 기술 기반의 검증 임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억’보다 ‘회복력’을 봐야
라빈스 박사는 “평균적인 알츠하이머 환자는 증상 발현 후 10년가량 생존한다”며 “치매 진단의 목적은 절망이 아니라 조기 개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가족은 환자의 결핍만 보려 하지 말고, 여전히 남아 있는 기능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환자와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을 지키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자칫 파국으로 치닫게 쉬운 알츠하이머에 대응하는 중요한 인식의 전환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