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곽봉석 DB증권 대표가 내년 3월 연임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확인된 355억원 규모 '상품권 깡' 사고가 대표 취임 이후에도 2년 넘게 지속된 사실이 연임에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실적은 개선 흐름을 보였지만 세부 재무 내역을 들여다보면 평가이익과 종속회사 회복 등 외부 요인의 비중이 큰 만큼 '경영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업계는 감독당국이 내부통제 실패를 심각하게 보고 있어, 이번 연임 심사의 본질은 실적 경쟁이 아닌 '상품권 깡' 사고를 회사가 얼마나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했는지 그 기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DB증권의 '상품권 깡' 사고는 2016년부터 약 9년간 이어졌으며, 곽봉석 대표 취임 이후인 2023~2024년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2년 넘게 지속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회사는 사고 확인 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사후관리·책임구조·ID관리 체계를 손봤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본래 이런 조치는 사고 발생 이전에 작동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회사 명의로 상품권이 구매·현금화되면서 약 30억원의 미정산 금액까지 발생한 점도 내부통제가 장기간 기능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언급됩니다.
곽 대표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기업금융(IB) 부문에서 프로젝트금융본부장·총괄부사장 등을 맡아 주요 승인·심사 과정에 관여해왔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감안하면 조직 내 리스크 징후를 파악하거나 이상 거래를 점검해야 할 위치에 있었던 만큼 재임 기간에도 동일한 형태의 사고가 지속된 점은 연임 여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 5월 공론화된 오래된 사고이지만, 대표 취임 이후에도 같은 방식이 이어졌다는 점은 별도의 책임 문제"라며 "연임 판단의 핵심은 '왜 재임 중에도 중단되지 못했는가'라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TF 구성은 사고 이후 당연히 해야 할 조치일 뿐, 9년간 이어진 거래 자체를 사전에 포착하지 못한 내부통제 체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일각에서는 DB증권이 중형 증권사 가운데 가장 뚜렷한 성장 흐름을 보여온 만큼 실적만 놓고 보면 연임론 부상이 자연스러운 구도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실제로 DB증권은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 1010억원, 순이익 829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92.5%, 85.3%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를 보면 곽봉석 대표 취임 이후(2023~2025년 3분기 기준) 실적 개선의 상당 부분이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항목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항목이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 금융상품 관련 이익, 이른바 평가이익입니다. 이 항목은 2023년 5753억원에서 2024년 6212억원,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 7701억원으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12억원에서 618억원, 그리고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 1009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실적 개선 폭 대부분이 평가이익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이 수치로 확인됩니다.
또한 회사가 강조해온 프라이빗뱅커·기업금융 연계(PIB) 전략의 성과를 보여야 할 수수료 수익은 구조적 개선 흐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수료 수익은 2023년 2025억원에서 2024년 2239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으로는 1829억원으로 다시 감소했습니다. 이는 고객 기반에서 안정적으로 발생해야 하는 본원적 수익이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리테일·IB 결합 모델이 실질적인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한 경제학과 교수는 "PIB는 고객 기반에서 안정적으로 발생하는 수수료 수익이 핵심 성과지표"라며 "수수료 수익이 감소했다는 것은 PIB 전략의 실질적 확장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평가했습니다.
연결 실적도 크게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중 상당 부분은 종속회사 회복에 따른 외부 환경 효과가 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DB저축은행과 DB자산운용은 금리 안정과 시장 반등의 영향을 받으며 실적이 회복됐고, 이는 경영전략의 성과라기보다는 시장 변화에 따른 반사 이익에 가깝다는 평가입니다. 평가이익 증가와 종속회사 회복이 실적을 떠받친 만큼, 올해 개선된 수치만으로 경영 성과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 회계 전문가는 "겉으로 보이는 숫자는 좋아졌지만, 이는 시장 반등이 만든 외형적 효과일 뿐"이라며 "본업 경쟁력이 강화됐다는 구조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수수료 기반 수익이 정체된 상황에서는 평가이익이 줄어드는 순간 실적 변동성이 다시 커질 수 있다"며 "연임 판단에서는 단기 수치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