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가 대학 위기의 모범 사례로 제시하고 있는 영국 헤리퍼드의 NMITE(New Model Institute for Technology & Engineering) 캠퍼스. (사진=NMITE)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세계의 대학들이 벼랑 끝에 섰습니다. <네이처(Nature)>의 표현을 빌리면 ‘최근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 혁신이 대학들에 전례 없는 압박을 가하며, 교육의 목적, 전달 방식, 자금 조달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의 연방 연구비 삭감 여파로 감원과 지출 축소가 현실화하는가 하면, 정치적 압박은 학문 자유의 경계까지 흔들고 있습니다. 유학생 흐름은 비자·수수료 장벽으로 재편되고, 박사과정의 ‘멘탈 헬스’ 경고음도 커졌습니다. 네이처가 지난 9월 하순 잇따라 보도한 특집기사들을 종합하면, 오늘의 위기는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 대학이라는 제도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국면입니다. 말 그대로 총체적 위기 상황입니다.
① 재정 충격: “감원·휴직·긴축”…연구의 심장부가 식는다
미국 대학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과학 예산 삭감 파장 속에 직원 감축과 지출 동결, 휴직 같은 긴축 시나리오를 꺼내 들었습니다. 네이처는 현장 취재를 종합하면서 “더 깊은 삭감이 현실화할 경우 추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썼습니다. 연구실과 대학원이 직격탄을 맞는다면 중장기 연구의 연속성은 흔들리게 될 것입니다.
상황은 영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9월24일 네이처 사설(Editorial)은 ‘대학을 기업처럼, 연구를 공공투자처럼’ 취급하는 정책 기조가 재정 위기를 악화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고질적인 학비 규제와 인플레이션, 정부 지원 정체의 조합이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② 정치적 압력: “대학을 겨냥한 세계적 공세”…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네이처는 대학을 향한 정치적 압력이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대학을 겨냥한 전방위적 공세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학문 자율을 억압하고 연구자를 위축시키는 정치와 이념의 간섭이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관측된다는 것입니다. 편집진은 침묵의 비용을 경고하며, 대학과 과학계가 공적 가치와 사실에 기반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연구자를 향한 괴롭힘·위협에 대응하는 실무 지침서가 나올 정도로 현장의 긴장도는 높아졌다는 것이 네이처의 취재 결과입니다. 대학이 제도적으로 연구자를 방어하지 않으면 ‘위축 효과’는 연구 주제 선택과 공적 소통 전반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③ 이동성의 단절: 비자·수수료 장벽, 유학생 지형 재편
흔히 국제 유학생 이동은 고등교육의 혈류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미국의 비자 규제 강화, 입국 요건 변화 등이 글로벌 학자나 학생들의 흐름을 제약하고 있어 과학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습니다. 면제 범위도 불분명해 대학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경쟁국은 그 틈을 파고듭니다. 홍콩 등 아시아 대학들이 즉각적 스카우트에 나서고, 캐나다·호주·유럽도 판짜기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네이처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국경을 넘는 학습자 수는 많아졌고, 어디서 무엇을 배우는지의 중심축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습니다. ‘영미권 일극 구조’는 약해지고, 다극화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④ 대학원 위기의 얼굴: 박사과정 ‘멘탈 헬스’ 경보
네이처의 설문조사와 특집 보도에 따르면 박사과정의 불안·우울·직장 괴롭힘·부적절한 지도 등 구조적 위험요인이 커지고 있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만족도는 일부 회복됐지만, 지도 체계와 연구문화의 개선 없이는 본질적 처방이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스웨덴 코호트 데이터는 학위가 길어질수록 정신건강 약물 사용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함을 보여주었습니다.
현장에선 증거 기반 개입(동료 멘토링, 업무·생활 경계 설정, 연구실 문화 개선, 접근성 높은 상담)이 확산 중에 있습니다. ‘학문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독성 문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 처방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⑤ 대학의 진화: “강의·시험 없는 21세기형 대학”의 실험
네이버의 취재에 따르면 일부 대학은 강의·시험·에세이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수요와 문제해결을 전면에 내세운 교육 모델을 실험 중에 있습니다. 전통적 연구중심 위상·유학생 수익에 덜 의존하고, 현장 기반 프로젝트·모듈형 학습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눈에 띕니다. 교육혁신은 대학의 정체성 보존이 아니라 미래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선택지로 제시됩니다.
“대학을 구하는 길, 대학만으로는 찾기 어려워”
정치·재정·기술이 동시에 판을 흔드는 시대, 대학은 사회와의 새로운 계약을 맺어야 한다고 네이처는 말합니다. 자율을 지키되, 연결을 넓히고, 혁신을 제도화할 때 대학은 다시 공공의 신뢰를 얻을 것이고 그것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라는 처방입니다. 네이처가 진단한 대학의 위기들은 저출산과 학령인구 급감, 수도권 쏠림으로 신음하는 우리 대학들도 동일하게 겪고 있는 문제들로 보입니다. 네이처가 제시하는 해결 방안들을 포함, 세계의 대학들이 문제를 풀어 나가는 방향들을 깊이 살펴봐야겠습니다.
DOI : https://doi.org/10.1038/d41586-025-03065-w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