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처가 사설을 통해 직격한 미국 식품의약국. (사진=Gettyimagebank)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세계 최고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가 또다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지난 10월3일 사설에서 네이처는 “과학과 공중보건의 불확실성을 무기화(weaponize)하는 행위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며, 트럼프의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 관련 발언과 이를 뒷받침한 FDA(미국 식품의약국)의 성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문제의 발언은 지난 9월22일, 트럼프가 백악관 행사에서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증 위험과 연관될 수 있다”며 복용 자제를 촉구한 데서 비롯됐습니다. FDA는 같은 날 “임산부의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이 아동의 자폐증·ADHD 위험 증가와 연관될 수 있다”는 내용의 라벨 변경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네이처는 이를 두고 “연구자들의 합의나 전체 데이터 스펙트럼을 반영하지 못한 위험한 단정”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불확실성을 이용한 단정은 공중보건 위협”
네이처는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타이레놀을 복용하지 말라(Don’t take Tylenol)”거나 “절대 복용하지 않도록 싸워라(Fight like hell not to take it)”라는 식의 단호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과학이 지닌 본래의 불확실성을 대중 불안 조성의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네이처는 “과학 연구에는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책임 있는 태도란 그 전체 맥락을 포함해 결과를 전달하는 것이며, 공중보건에서는 전문가 합의에 기반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학이 제시하는 ‘가능성(possibility)’을 ‘사실(fact)’로 오도하면, 그 결과는 국민 건강의 직접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 과학기관의 ‘신속 대응’에 찬사
이번 사설에서 네이처는 트럼프의 발언 자체보다 그 이후 전 세계 보건당국과 학계가 보인 빠르고 일관된 대응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자폐증의 연관성을 입증하는 결정적 과학적 증거는 없다”고 즉각 성명서를 냈습니다. 유럽의약품청(EMA)도 “임신 중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증거는 없다”며 지침을 바꾸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영국·호주를 포함한 각국 규제 기관들, 그리고 미국 내 여러 주(州) 보건당국과 전문 학회들(자폐 스펙트럼 연구·산부인과 분야) 역시 한목소리로 “지침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네이처는 “허위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이를 신속히 바로잡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번처럼 주요 공중보건 기관들이 즉각적이고 일관된 메시지를 낸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대응은 미국의 정치적 발언이 세계적 혼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은 ‘과학 커뮤니티의 집단적 방역’으로 해석됩니다. 네이처는 특히 “미국의 행동은 전 세계 보건·과학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국제적 신뢰망을 지키려면 과학기관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체리 피킹(Cherry-picking)과 선택적 인용의 위험
사설은 또한 트럼프와 백악관이 일부 연구만 인용하고 불편한 사실은 의도적으로 생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컨대 백악관이 인용한 뉴욕 마운트시나이 의대의 디디에 프라다 연구는 “주의가 필요하다(warrants caution)”는 단서를 달고 있었지만, 백악관 발표문에서는 이 부분이 삭제됐습니다.
반대로,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의 대규모 코호트 연구(250만명)나 일본 국립아동건강발달센터의 20만명 코호트 연구처럼 연관성을 찾지 못한 연구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네이처는 이를 “정책적 목적을 위한 연구의 체리 피킹”이라며, 과학을 왜곡하는 가장 위험한 방식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네이처는 이번 논란을 미국 정치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사설은 “미국의 결정은 전 세계 보건정책의 신호로 작용한다”라며, “전문성과 신뢰를 갖춘 기관들이 신속히 사실을 바로잡고, 그 메시지를 세계적으로 증폭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이는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는 현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의학적 근거가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연구가 정책 논리나 여론 조작의 근거로 활용되는 일, 혹은 SNS나 언론을 통한 ‘과학적 단정’이 대중의 불안과 오해를 키우는 현상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국내 의대 정원 확대 논란에서의 통계 해석 혼선은 ‘과학적 불확실성의 정치화’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복잡한 사안일수록 전체 맥락을 전달해야”
네이처는 이번 사설을 통해, 과학적 언어의 본질은 ‘단정’이 아니라 ‘정직한 맥락 전달’임을 강조했습니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증거를 조화롭게 해석하며, 대중에게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과학의 윤리라는 것입니다.
네이처는 “공중보건 분야는 과학 전반과 마찬가지로, 특정 견해를 지지하는 주장만을 인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구의 질을 고려하여 이용 가능한 모든 증거를 정기적으로 평가함으로써 결정을 내린다. 새로운 증거가 등장하면 권고사항을 재검토하고 필요시 수정한다”라며 미국 연방 기관들이 이제 이 접근법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인과 전 세계인의 건강에 실질적인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합니다.
이 사설은 “전 세계 공중보건 기관들은 계속해서 기록을 바로잡아야 하며, 필요할 때는 신속히 그렇게 해야 한다. 무대응의 위험은 너무 크다. 과학에는 거의 항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책임 있는 태도는 연구 결과를 그 전체적 의미를 담아 전달하는 것이며, 공중보건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의 합의에 부합하는 결정이 내려지도록 보장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로 끝을 맺습니다. 트럼부 행정부만이 아니라 모든 정부와 기관들이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입니다.
DOI : https://doi.org/10.1038/d41586-025-03167-5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